은퇴자금 5억원으로 매달 200만원씩 쓰면 29년을 버팁니다. 60세에 은퇴해도 88세까지 가죠. 그런데 물가를 계산에 넣는 순간 20년으로 줄어듭니다. 79세에 통장이 빕니다. 무서운 건 한국은행 목표치인 연 2%만 넣어도 7년이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인출액별 소진 시점, 은퇴를 3년 늦출 때 돌아오는 7년까지 계산 과정을 전부 공개합니다.
은퇴 자금 5억원을 모았다고 해보겠습니다. 매달 200만원씩 꺼내 쓸 계획입니다. 남은 돈에는 이자도 붙습니다. 이러면 몇 년을 버틸까요?
계산기를 두드리면 29년이 나옵니다. 60세에 은퇴해도 88세까지 갑니다. 넉넉해 보입니다.
실제로는 20년입니다. 79세에 통장이 빕니다. 계산에서 딱 하나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빠진 건 '물가' 하나입니다.
이 글은 사라진 9년의 행방을 쫓아갑니다. 먼저 두 가지만 짚고 시작하겠습니다. 이 글에는 종목 추천이 한 줄도 없고, 예금이 나쁘다는 말도 아닙니다.
비상금이나 2년 안에 쓸 돈은 예금이 정답입니다. 그 구간에선 원금이 확실한 게 수익률보다 백배 중요합니다. 제가 하려는 건 투자 권유가 아니라 계산 이야기입니다.
물가도 '복리'로 움직입니다
배경부터 하나 깔겠습니다. 다들 예금 복리는 반깁니다. 이자가 이자를 낳는다면서요. 물가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오른 물가 위에서 또 오릅니다. 문제는 방향입니다. 예금 복리는 내 편이고, 물가 복리는 반대편에 섭니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100년 전에 이 문제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통해, 몰래, 눈에 띄지 않게 시민의 부를 몰수할 수 있다"
"100만 명 중 한 명도 이 과정을 알아채지 못한다"
케인스가 1919년에 쓴 글입니다. 알아채지 못한다는 대목이 핵심입니다. 통장 앱에는 경고등이 뜨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은퇴 계획에서 물가는 가장 자주 빠집니다.눈에 보이는 건 잔고와 이자뿐이거든요. 지난달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는 국가데이터처 소비자물가동향에 매달 나옵니다. 그런데 그 숫자를 자기 은퇴 계획에 넣어본 사람은 드뭅니다.
체감이 어려우시면 자장면으로 보시죠.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6월 조사에서 서울 자장면은 한 그릇 7,654원이었습니다. 만원 한 장으로 두 그릇을 못 먹는 시대가 이미 왔습니다.
20년 이자 농사의 실제 수확은 0원입니다
은퇴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더 단순한 계산을 하나 보겠습니다.
1억원을 20년 동안 예금에 넣어둔다고 해보죠. 세후 연 2.5%로 굴러간다고 하겠습니다. 20년 뒤 잔고는 1억 6,386만원이 됩니다.
통장만 보면 6,386만원을 번 겁니다. 뿌듯한 숫자죠. 그런데 같은 기간 물가도 연 2.5%씩 올랐다면 어떨까요?
그 1억 6,386만원으로 살 수 있는 건, 오늘의 1억원어치입니다. 20년 이자 농사의 실제 수확이 정확히 0원이라는 뜻입니다.
물가가 지금처럼 3%대로 이어진다면 더 나빠집니다. 살 수 있는 건 8,727만원어치로 줄어듭니다. 20년을 성실하게 저축하고도 뒤로 간 셈이죠.
잔고는 늘었는데 재산은 줄었습니다. 이 구조를 은퇴 계획에 그대로 옮기면 어떻게 되는지, 이제 보겠습니다.
사라지는 9년, 계산 과정을 공개합니다
이제 숫자로 확인해보겠습니다. 조건은 이렇습니다. 은퇴 자금 5억원, 매달 200만원 인출, 남은 돈은 세후 연 2.5%로 굴립니다.
물가를 넣지 않으면 29년차에 바닥납니다. 여기에 물가만 얹어보겠습니다. 나머지 조건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 물가 가정 | 자금이 바닥나는 시점 | 60세 은퇴 기준 | 잃는 시간 |
|---|---|---|---|
| 물가 미반영 | 29년차 | 88세 | 기준 |
| 연 2.0% (한국은행 목표) | 22년차 | 81세 | 7년 |
| 연 2.5% | 21년차 | 80세 | 8년 |
| 연 3.2% (2026년 6월 실제) | 20년차 | 79세 | 9년 |
표에서 가장 무서운 줄은 맨 아래가 아닙니다. 두 번째 줄입니다. 연 2.0%는 한국은행이 공언한 물가안정목표입니다.
물가와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의 숫자죠. 그 승리한 시나리오에서도 7년이 사라집니다. 즉 9년은 최악의 경우가 아닙니다. 물가를 빼놓으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오차입니다.
생활비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매달 빼 쓰는 200만원이 고정값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0년 뒤에도 지금과 '똑같이' 살고 싶다고 해보죠. 그러면 200만원으로는 안 됩니다.
| 시점 | 물가 연 2.5%일 때 | 물가 연 3.2%일 때 |
|---|---|---|
| 지금 | 월 200만원 | 월 200만원 |
| 10년 뒤 | 월 256만원 | 월 274만원 |
| 20년 뒤 | 월 328만원 | 월 376만원 |
생활을 늘린 게 아닙니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집에 사는 값입니다. 그런데 20년 뒤엔 매달 128만원이 더 듭니다.
머릿속 계산은 20년 내내 200만원을 가정합니다. 실제 지갑은 328만원을 꺼냅니다. 이 틈이 9년을 먹습니다. 인플레이션 계산기에 금액과 기간을 넣으면 이 변화가 바로 나옵니다.
얼마를 빼 쓰느냐가 판을 바꿉니다
인출액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같은 5억으로 여러 경우를 돌려봤습니다.
| 매달 빼 쓰는 돈 | 물가 미반영 | 물가 2.5% 반영 | 줄어드는 시간 |
|---|---|---|---|
| 150만원 | 46년차 | 28년차 | 18년 |
| 200만원 | 29년차 | 21년차 | 8년 |
| 250만원 | 22년차 | 17년차 | 5년 |
| 300만원 | 17년차 | 14년차 | 3년 |
눈여겨볼 건 맨 오른쪽 열입니다. 많이 쓸수록 줄어드는 시간이 오히려 짧습니다.
이상해 보이지만 이유는 단순합니다. 많이 빼 쓰면 물가가 일할 시간도 없이 돈이 먼저 떨어지거든요. 물가는 오래 남아 있는 돈을 갉아먹는 힘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오래 버틸 계획일수록 물가를 넣지 않은 계산이 크게 빗나갑니다. 월 150만원 계획은 46년이 28년이 됩니다. 18년이 사라지는 거죠.
은퇴를 3년 늦추면 7년이 돌아옵니다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계산해보면 지렛대가 꽤 큽니다.
60세 은퇴, 5억, 월 200만원. 이 조건에서 물가 2.5%면 21년차에 바닥납니다. 80세죠.
여기서 은퇴를 3년만 미뤄보겠습니다. 그동안 월 100만원씩 더 모으고, 기존 자산도 계속 굴린다고 하고요.
| 은퇴 시점 | 시작 자금 | 자금이 바닥나는 나이 |
|---|---|---|
| 60세 | 5억원 | 80세 |
| 63세 | 5억 7,628만원 | 87세 |
| 65세 | 6억 3,036만원 | 91세 |
3년을 더 일하면 7년이 돌아옵니다. 5년이면 11년입니다. 미룬 기간보다 더 크게 돌아오는 이유는, 쓰는 기간이 줄면서 모은 돈이 동시에 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건 계산일 뿐입니다. 건강이나 회사 사정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몇 년 더'가 만드는 차이가 이 정도라는 건 알고 결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저는 원금 안 깨고 이자로만 살 건데요"
여기서 이런 반론이 나옵니다.
"원금을 안 건드리면 되잖아요"
일리 있는 생각입니다. 5억을 세후 연 2.5%로 굴리면 매달 104만원이 나옵니다. 원금은 그대로죠. 20년 뒤에도 통장에는 똑같이 104만원이 찍힙니다.
문제는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64만원어치라는 겁니다. 원금을 1원도 안 깼는데 월급이 39% 깎인 셈이죠. 원금 보전은 '금액'을 지키는 일이지 '생활'을 지키는 일이 아닙니다.
이자 자체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닙니다. 소득세법 제129조에 따라 14%가 원천징수되고, 지방소득세까지 더하면 15.4%가 빠집니다. 표시 금리와 실수령액은 예금·적금 이자 계산기로 견줘볼 수 있습니다.
물가를 빼먹은 계획의 끝
이게 남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통계가 보여줍니다. 서울회생법원 개인파산 통계를 보시죠. 2025년 상반기에 접수된 개인파산 사건의 절반이 60세 이상이었습니다. 정확히는 51.1%입니다.
50세 이상으로 넓히면 78.4%가 됩니다. 파산 신청자 5명 중 4명이 50대를 넘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노후 파산의 방아쇠는 병원비, 실직, 빚보증 등 다양합니다. 물가 하나가 원인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물가를 빼먹은 설계가 그 문을 열어둡니다.
기준선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국민연금연구원 노후보장패널 조사를 보시죠. 부부 적정 노후생활비는 월 298만 1천원이었습니다. 2024년 조사에서 사람들이 답한 금액입니다.
물가 2.5%면 20년 뒤 같은 생활에 월 488만원이 듭니다. 지금 기준으로 계획하면 그만큼이 통째로 빕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면 될까요
거창한 걸 권하진 않겠습니다. 이번 주말에 할 수 있는 것만 세 가지 남기겠습니다.
첫째, 내 은퇴 계획에 물가 칸이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없다면 그 계획은 오늘 물가로 30년을 사는 계획입니다. 둘째, 물가를 넣고 다시 돌려보세요. 남의 표를 보는 것과 내 숫자를 보는 건 다릅니다.
셋째, 줄어든 만큼을 어디서 메울지 정하세요. 은퇴를 늦추거나, 인출액을 줄이거나, 물가보다 빠른 수익 구조를 만드는 것. 선택지는 이 셋뿐입니다.
세 번째 길을 고른다면 출발점은 종목 찍기가 아닙니다. 세금입니다. 이자와 배당에는 15.4%가 붙습니다. 이걸 아끼는 것만으로 실질 수익률이 1%포인트 넘게 오르곤 합니다.
ISA와 일반계좌 세후 비교 계산기로 아낄 세금부터 확인해보세요. 연말정산까지 잡고 싶다면 연금저축·IRP 세액공제 계산기가 있습니다. 상품을 고르기 전엔 실제 금리부터 견줘보세요. 금융감독원 통합비교공시와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공시돼 있습니다.짚어둘 한계
이 계산은 단순화한 모형입니다. 실제 노후는 이보다 복잡합니다. 국민연금이나 주택연금이 들어오면 인출액이 줄어 기간은 늘어납니다.
반대로 의료비는 일반 물가보다 빠르게 오릅니다. 수익률도 매년 2.5%로 고정되지 않고 출렁입니다. 세부 지표는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표의 '20년'을 예언으로 받아들이진 마세요. 중요한 건 연수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물가를 넣는 순간 계획이 짧아진다는 사실, 그거 하나입니다.
예금 하나만 놓고 본 1년짜리 셈법도 있습니다. 기준금리 2.75% 인상과 예금 세후 수익에 정리해뒀습니다. 은퇴에 '얼마가' 필요한지는 은퇴 생활비 인플레이션 가이드에 있습니다. 이 글이 맡은 건 '언제 바닥나는가' 하나입니다.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Q1. 물가상승률은 몇 %로 넣는 게 맞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한국은행 목표치인 2%가 가장 보수적인 하한선입니다. 2026년 6월 실제 상승률은 3.2%였습니다. 두 값으로 각각 돌려보고 그 사이를 각오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Q2. 세후 연 2.5%는 어디서 나온 값인가요?
예금 금리에서 이자소득세 15.4%를 뺀 수준을 가정했습니다. 1년 정기예금 상단이 연 3%대이므로 세금을 떼면 2%대 중반이 됩니다. 수익률을 높여 넣으면 기간은 늘지만, 물가가 갉아먹는 구조 자체는 그대로입니다.
Q3. 그럼 예금을 다 빼야 하나요?
아닙니다. 2년 안에 쓸 돈은 예금이 맞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10년 넘게 안 쓸 돈까지 전부 예금에 두는 경우입니다. 돈에 쓸 날짜를 붙여 칸을 나누는 게 먼저입니다.
Q4. 이미 은퇴했는데 늦은 건 아닌가요?
늦지 않았습니다. 인출액을 조금만 낮춰도 기간은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매달 200만원을 180만원으로 줄이면 몇 년이 붙는지, 직접 넣어보시면 바로 나옵니다.
Q5. 예금자보호 한도가 1억으로 오른 건 도움이 되나요?
잔고를 지키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2025년 9월 1일부터 한도가 1억원이 됐고, 예금보험공사가 원금과 약정이자까지 보장합니다. 다만 그 돈의 '가치'는 보호 대상이 아닙니다. 이 글이 다루는 위험은 은행이 망하는 쪽이 아니라 물가 쪽입니다.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파산은 잔고가 0이 되는 날 시작되지 않습니다. 내 돈이 내 생활을 못 지키게 된 날, 이미 시작된 겁니다.
그리고 그날을 알리는 사이렌은 울리지 않습니다. 케인스 말대로 100만 명 중 한 명만 알아챕니다. 물가를 막는 건 한국은행의 일이고, 내 계획에 물가를 넣는 건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물가를 계산에 넣어본 사람은 그 한 명 쪽에 섭니다. 오늘 그 계산을 하면 당신이 그 한 명이 됩니다.
FIRE 계산기를 열고 '상세 모드로 전환'을 눌러보세요. '물가상승률 반영하기' 칸이 나옵니다. 그 체크 하나를 켰다 껐다 해보세요. 같은 저축으로 목표에 닿는 시점이 얼마나 밀리는지 바로 보입니다. 그 차이가 편안하면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이 노후를 지킬 첫 신호입니다.
참고 자료
- 한국은행, 물가안정목표제
- 한국은행, 기준금리 추이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 국가데이터처, 2026년 6월 소비자물가동향(2026.7.2.)
- e-나라지표, 소비자물가상승률 연도별 추이
- 국가데이터처, 소비자물가지수의 이해
- 국가법령정보센터, 소득세법 제129조(원천징수세율)
- 금융감독원 금융상품통합비교공시, 정기예금
-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 예금금리 비교
- 예금보험공사
- 금융위원회, 예금보호한도 1억원 상향 보도자료
- 서울회생법원, 2025년 상반기 개인파산사건 통계조사 결과보고서
- 서울회생법원, 2025년 상반기 개인도산 통계 비교 결과보고서
- 국민연금공단, 2024년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 제10차 부가조사
-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외식비 가격정보
- 금융감독원 파인, 금융생활 안내
- J. M. Keynes, Inflation(1919)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