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치매머니가 172조원에 달한다고 밝혔고, 보건복지부는 치매 환자가 100만 명을 넘는 시점을 2026년으로 봤습니다. 주인은 살아 계신데 아무도 꺼낼 수 없는 돈입니다. 은행이 막는 기준은 진단서가 아니라 의사능력이고, 미리 받아둔 위임장은 법이 죽인 게 아니라 유효함을 증명할 길이 없어 막힙니다. 열쇠를 쥔 곳은 가정법원이며, 후견인이 되어도 거주 주택 처분에는 법원 허가가, 인출에는 월 한도가 걸립니다. 민법 조문과 대법원 판례, 금융위·금감원 발표 자료로 그 하루의 구조를 정리했습니다.
부모님 통장 비밀번호, 아마 알고 계실 겁니다. 어느 병원에 다니시는지도, 보험을 어디에 들어두셨는지도 아실 거고요. 그 정도면 준비는 해둔 셈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 소용없어지는 날이 옵니다. 비밀번호를 알아도, 자식이어도, 어머니가 바로 옆에 앉아 계셔도 창구에서 돈이 나오지 않습니다.
도둑질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 병원비를 내겠다는 건데도 그렇습니다. 이상하게 들리시죠?
오늘은 그 하루를 뜯어보겠습니다. 왜 막히는지, 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금 무엇을 해두면 그날이 덜 아픈지. 이 셋을 순서대로 짚어드리겠습니다.
172조원인데, 주인이 못 쓰는 돈
숫자부터 하나 보고 시작하죠. 정부가 이 돈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치매머니'입니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12월 업무보고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치매머니가 172조원에 달한다고요. 2025년 말 기준 추정치입니다.
172조원은 감이 잘 안 오는 액수입니다. 쉽게 바꾸면, 치매를 앓고 계신 분들 명의로 되어 있는 예금과 부동산의 총합입니다. 주인은 살아 계신데, 주인이 쓰지 못하는 돈이죠.
왜 이 돈이 지금 문제가 됐을까요? 인구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가 2023년 치매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런 추계를 함께 냈습니다. 65세 이상 치매 유병률은 9.25%였고, 2025년 환자 수는 97만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문장 하나가 더 붙어 있습니다.
"치매 환자 수가 100만 명을 넘는 시점은 2026년"
바로 올해입니다. 노인 열한 명 중 한 명꼴이고,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까지 넣으면 2025년에만 298만 명입니다. 남의 집 이야기라고 하기엔 숫자가 너무 큽니다.
은행이 막는 건 '진단서'가 아닙니다
여기서 가장 흔한 오해를 먼저 걷어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알고 계십니다. 치매 진단을 받으면 그때부터 은행 거래가 막힌다고요.
정확하지 않습니다. 법이 보는 것은 병명이 아니라 '의사능력'입니다.
의사능력이라는 말이 어렵게 들리실 텐데, 대법원이 풀어놓은 정의가 있습니다. 2008다58367 판결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기 행위의 의미와 결과를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라고요.
쉽게 말하면 이겁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그리고 이 판결에는 훨씬 중요한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의사능력은 사람 단위로 한 번에 정해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판결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의사능력의 유무는 '구체적인 법률행위와 관련하여 개별적으로 판단'됩니다. 게다가 어렵고 복잡한 거래일수록 더 높은 이해력을 요구합니다. 그 거래의 일상적인 뜻뿐 아니라, 법률적인 의미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게 실무에서 무슨 뜻이 될까요? 같은 날 같은 사람이라도, 편의점에서 우유를 사는 건 되고 정기예금을 깨는 건 안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은행은 난처해집니다. 창구 직원이 어머니의 의사능력을 그 자리에서 판정할 방법이 없거든요. 판정을 잘못하면 그 거래는 나중에 통째로 무효가 됩니다.
무효라는 말의 무게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취소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없던 일이 되는 겁니다. 은행이 몸을 사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미리 받아둔 위임장은 왜 안 통할까
"그럴 줄 알고 위임장을 미리 받아뒀는데요"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법만 놓고 보면 그 위임장은 살아 있습니다.
민법 제127조는 대리권이 사라지는 경우를 딱 두 가지로 정해뒀습니다. 본인이 사망했을 때, 그리고 대리인이 사망하거나 성년후견을 받거나 파산했을 때입니다.한 번 더 읽어보시죠. '대리인'이 성년후견을 받았을 때입니다. 본인, 그러니까 어머니가 성년후견을 받는 건 목록에 없습니다.
민법 제690조도 똑같은 구조입니다. 위임은 당사자 한쪽의 사망이나 파산으로 끝나고, 여기서도 성년후견은 '수임인'이 받은 경우만 적어놨습니다.즉 법은 그 위임장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창구에서는 막힙니다. 왜일까요?
| 구분 | 법이 말하는 것 | 창구에서 벌어지는 일 |
|---|---|---|
| 기존 위임장 | 제127조·제690조상 자동 소멸 사유가 아님 | 본인 의사를 확인할 수 없어 지급 보류 |
| 새로 쓰는 위임장 | 의사능력이 없으면 그 자체가 무효 | 작성 자체가 무의미 |
| 성년후견 개시 후 | 후견인이 법정대리인 | 후견등기사항증명서로 권한 확인 |
이유는 세 겹입니다. 첫째, 은행은 위임이 지금도 유효한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머니께 전화해 여쭤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요.
둘째, 위임장을 새로 쓰는 건 더 답이 없습니다. 위임장에 서명하는 것 자체가 법률행위라서, 의사능력이 없으면 그 서명이 무효입니다.
셋째, 성년후견이 개시되면 민법 제10조에 따라 어머니가 한 법률행위는 취소될 수 있게 됩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지급한 돈을 토해내야 할 위험이 생기는 겁니다.
차이가 미묘하지만 결정적입니다. 위임장이 무효라서 막히는 게 아닙니다. 유효한지 아무도 증명해줄 수 없어서 막히는 겁니다.
열쇠는 자식이 아니라 법원이 쥐고 있습니다
그럼 누가 어머니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가정법원이 정해준 사람입니다.
배경을 조금 깔겠습니다. 예전에는 '금치산'과 '한정치산'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름부터 살벌하죠. 능력을 지나치게 빼앗는다는 비판이 쌓여, 2013년 민법 개정으로 지금의 성년후견제도가 들어섰습니다.
금융위원회가 성년후견인 금융거래 매뉴얼에서 분류를 정리해뒀습니다. 그대로 빌려오면 이렇습니다. 나이로 미성년후견과 성인 후견을 나누고, 성인 후견은 누가 정하느냐에 따라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으로 갈립니다. 법정후견은 다시 대리 범위에 따라 셋으로 나뉩니다.
| 유형 | 근거 조문 | 대상 | 본인의 행위능력 |
|---|---|---|---|
| 성년후견 | 민법 제9조·제10조 | 판단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 | 원칙적으로 제한. 일용품 구입은 예외 |
| 한정후견 | 민법 제12조·제13조 | 판단 능력이 부족한 사람 | 원칙적으로 유지. 법원이 정한 범위만 동의 필요 |
| 특정후견 | 민법 제14조의2 | 일시적 또는 특정 사무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 | 제한 없음. 단독 금융거래 가능 |
| 임의후견 | 민법 제959조의14 | 본인이 건강할 때 스스로 정해둔 경우 | 계약에서 정한 범위 |
이 표에서 꼭 보셔야 할 칸은 맨 오른쪽입니다. 민법 제10조를 보면 성년후견이 개시된 뒤 본인이 한 법률행위는 취소할 수 있습니다. 단 일용품 구입처럼 일상에 필요하고, 값이 과하지 않은 거래는 취소하지 못하게 막아뒀습니다.
한정후견은 결이 다릅니다. 민법 제13조는 법원이 '동의를 받아야 하는 행위의 범위'를 정하도록 했습니다. 그 범위 밖은 본인이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특정후견은 더 가볍습니다. 기간이나 사무 범위를 정해서 하고, 무엇보다 본인의 뜻에 반해서는 할 수 없습니다.이 제도를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앞서 인용한 금융위원회 자료에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을 인용한 표가 실려 있습니다.
| 연도 | 후견사건 접수 건수 |
|---|---|
| 2013년 | 1,883건 |
| 2015년 | 4,674건 |
| 2017년 | 7,033건 |
| 2019년 | 9,585건 |
| 2021년 | 11,545건 |
8년 만에 6배가 됐습니다. 참고로 2021년 접수된 1만 1,545건 중 실제로 받아들여진 건 8,575건, 74.3%였습니다. 넷 중 하나는 신청하고도 못 받았다는 뜻이죠.
여기서 솔직하게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이 표는 2021년까지입니다. 정부 문서가 인용한 가장 최근 수치라 그대로 가져왔고, 더 최신 연도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심판이 얼마나 걸리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원이나 법제처가 공표한 공식 통계를 찾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에는 몇 개월이라는 숫자가 떠다니지만 출처가 대부분 광고성 글이라, 여기서는 기간을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확실한 것만 말씀드리죠. 신청서를 내면 그날 끝나는 절차가 아닙니다. 정신 감정이 필요하면 기간은 더 늘어납니다.
후견인이 되어도, 어머니 돈은 끝까지 어머니 돈입니다
여기부터가 사람들이 가장 크게 놀라는 대목입니다. 심판을 받아 후견인이 되면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시거든요.
그렇지 않습니다. 후견인은 어머니 재산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인입니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집입니다. 민법 제947조의2 제5항을 보시죠. 어머니가 살고 계신 건물과 그 땅이 대상입니다. 팔거나, 세를 놓거나, 저당을 잡히려면 가정법원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요양원비를 마련하려고 어머니 집을 정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원을 한 번 더 거쳐야 하죠.
두 번째 벽은 한도입니다. 금융위원회가 관계기관과 함께 낸 문답집에 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후견등기에 조건이 붙은 경우입니다. 매월 500만원을 넘겨 인출하려면 법원 허가를 받으라는 조건이죠.
문답집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1월에 법원 허가를 받아 1,000만원을 뽑았다면, 그 달 한도는 이미 소진된 것으로 봅니다. 다음 달이 되어야 다시 500만원을 쓸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벽이 가장 매섭습니다. 어머니 계좌에서 내 계좌로 돈을 옮기는 것 말입니다.
같은 문답집은 이 경우 은행이 객관적인 증빙을 요구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증빙이 없을 때가 문제입니다. 권한 남용이나 재산 범죄로 의심할 수 있으니, 지급을 거절해야 한다고까지 썼습니다.
| 하려는 일 | 후견인이 바로 할 수 있나 |
|---|---|
| 거래내역 조회, 잔액증명서 발급 | 가능 |
| 예금 입출금, 계좌 개설과 해지 | 가능. 단 등기에 한도가 있으면 그 범위 안에서 |
| 체크카드, 현금카드 발급 | 가능. 일반 금융거래 대리권에 딸린 행위로 봄 |
| 대출 신청, 부동산 담보 제공 | 법원 허가 또는 후견감독인 동의 필요 |
| 어머니가 사시는 집 매도와 임대 | 가정법원 허가 필요 |
| 어머니 계좌에서 내 계좌로 이체 | 증빙 없으면 은행이 거절해야 함 |
정부도 현장이 매끄럽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있습니다. 위 매뉴얼을 만든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거든요. 은행마다 요구하는 서류가 달랐고, 갈 때마다 같은 서류를 또 내야 했습니다. 등기부에 분명히 적힌 권한인데도 제한받는 일까지 있었고요.
그래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은행연합회, 서울가정법원이 함께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뒤집어 보면, 매뉴얼이 생겼다는 건 그전까지 기준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 사이에도 요양비는 매달 나갑니다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병원비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이 공백을 메우려고 정부가 만든 장치가 하나 있습니다.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가 2023년 4월 개선 방안을 내놨습니다. 이름은 '거동 불가 예금주의 치료비 목적 예금 인출 절차 개선'입니다. 그해 4월 20일부터 모든 은행이 함께 시행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가족이 요청하면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받지 않고, 돈은 병원이나 장례식장 계좌로 직접 보내주는 방식입니다.
| 구분 | 상황 | 달라진 점 |
|---|---|---|
| CASE 1 | 의식불명 | 가족 요청 시 병원 계좌로 직접 입금 |
| CASE 2 | 의식 있음, 거동 불가, 가족 있음 |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받지 않음 |
| CASE 3 | 의식 있음, 거동 불가, 가족 없음 | 종전대로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필요 |
| CASE 4 | 사망 | 상속예금지급신청서 없이 병원과 장례식장에 직접 이체 |
지급 대상도 넓어졌습니다. 예전에는 긴급한 수술비만 됐지만 지금은 입원비와 검사비까지 들어갑니다. 갈 수 있는 곳도 병원에서 요양병원, 요양원, 장례식장까지 늘었고요.
여기까지만 보면 꽤 괜찮은 제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제도에는 반드시 알고 계셔야 할 한계가 세 개 있습니다.
첫째, 돈이 가족 손에 오지 않습니다. 병원 계좌로 직접 갑니다. 어머니 대신 관리비를 내거나 생활비를 쓰는 데는 못 씁니다.
둘째, 쓸 수 있는 항목이 치료비와 장례비로 한정됩니다. 요양원 월 이용료 중 비급여 부분이나 어머니 명의 공과금은 여기에 없습니다.
셋째는 제도의 이름에 이미 적혀 있습니다. 대상이 '거동 불가' 예금주거든요.
구분도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로 갈립니다. 그런데 치매는 몸이 아니라 판단력이 먼저 무너지는 병입니다. 걸어 다니시고 말씀도 하시는데 계약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가 길게 이어지죠.
바로 그 구간이 이 제도의 지도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오래 잠겨 있는 돈에 우회로가 가장 좁습니다.
"설마 자식인데 은행이 막겠어요?"
이쯤에서 나올 법한 반론들을 먼저 꺼내놓겠습니다. 실제로 많이 듣는 이야기들입니다.
"자식인데 설마 막겠어요? 가족관계증명서 떼어 가면 되죠"
가족관계증명서는 가족이라는 사실만 증명합니다. 어머니 재산을 처분할 권한이 있다는 증명이 아닙니다. 그 권한을 보여주는 서류는 따로 있습니다. 전자후견등기시스템에서 떼는 후견등기사항증명서입니다.
"그럼 진단받기 전에 미리 다 인출해두면 되잖아요"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건 어머니 재산을 자녀가 옮겨두는 행위라서 결이 다릅니다. 나중에 후견인이 되면 재산 목록과 사용 내역을 법원에 보고해야 하고, 다른 형제가 문제 삼으면 설명해야 할 사람은 본인이 됩니다. 증여세 문제도 따라붙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재산이 별로 없어서 해당 없어요"
오히려 반대일 수 있습니다. 재산이 많으면 요양 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있지만, 적을수록 그 얼마 안 되는 예금이 곧 생활비이자 병원비거든요. 그 돈이 묶이면 부담은 고스란히 자녀 통장으로 넘어옵니다.
여기서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은행이 심술을 부리는 게 아닙니다. 창구 직원은 어머니를 지키는 쪽에 서 있는 겁니다. 자식이라며 찾아오는 사람이 전부 선의는 아니니까요.
바로 그 방어벽이, 선의를 가진 자녀에게도 똑같이 작동할 뿐입니다.
미리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아직 없는 제도
그럼 건강하실 때 무엇을 해둘 수 있을까요? 쓸 수 있는 카드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래서 하나씩 정확히 알아두는 게 낫습니다.
첫째는 후견계약, 이름을 바꾸면 임의후견입니다. 민법 제959조의14에 근거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판단력이 있으실 때, 나중에 누가 어떤 일을 대신할지 직접 정해두는 계약입니다. 참고로 보험으로 대비하는 방법은 치매보험과 간병비 글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을 어머니가 고르신다는 겁니다. 법정후견은 법원이 후견인을 정하지만, 임의후견은 어머니 뜻이 먼저입니다.
여기서 널리 퍼진 오해를 하나 깨야겠습니다. 계약서만 써두면 법원에 갈 일이 없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조문을 보면 세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 단계 | 무엇을 하나 | 근거 |
|---|---|---|
| 1단계 | 공정증서로 계약 체결. 사서 계약서는 효력 없음 | 민법 제959조의14 제2항 |
| 2단계 | 후견등기 | 민법 제959조의15 제1항 |
| 3단계 | 판단력이 떨어졌을 때 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 선임 | 민법 제959조의14 제3항 |
법원에 가는 건 똑같습니다. 달라지는 건 '누가 후견인이 되느냐'를 어머니가 미리 정해둔다는 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형제간 다툼 하나는 줄어듭니다.
둘째는 신탁입니다. 재산의 명의를 은행 같은 수탁자에게 넘기고, 정해둔 대로 관리하고 지급하게 하는 구조죠. 명의가 이미 넘어가 있으니 어머니의 판단력과 무관하게 지급이 이어집니다.
다만 정확히 짚을 게 있습니다. 흔히 언급되는 신탁법 제59조 유언대용신탁은, '사망한 뒤 누가 받느냐'를 정하는 조문입니다. 살아 계신 동안의 자산 동결을 막는 힘은, 조문이 아니라 신탁이라는 구조에서 나옵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나은행이 리빙트러스트 상품에 공시한 보수는 이렇습니다.
| 보수 항목 | 요율 | 기준 |
|---|---|---|
| 계약보수 | 0.5~1% | 신탁재산가액 |
| 집행보수 | 0.75~1.5% | 신탁재산가액 |
| 금전 관리보수 | 연 0.2~1% | 신탁원본 평균잔액 |
이건 한 은행의 공시일 뿐입니다. 은행마다 요율이 다르니 반드시 비교해보셔야 합니다. 신탁은 예금자보호 대상도 아니라는 점을 함께 기억해두시고요.
셋째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없는 제도에 관한 겁니다.
"은행에 미리 대리인을 등록해두면 된다던데요"
이 말은 아직 사실이 아닙니다. 일본에는 은행이 대리인을 미리 등록받아두는 서비스가 있지만, 한국 은행권에는 그런 제도가 아직 자리 잡지 않았습니다. 금융당국이 검토 중이라는 단계입니다.
헷갈리기 쉬운 이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보험의 '지정대리청구인'입니다. 이건 보험금을 대신 청구하는 제도라서 은행 예금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알고 계시면 정작 필요할 때 낭패를 봅니다.
마지막으로, 가족이 없는 분들을 위한 제도도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치매관리법 제12조의3을 보시죠. 지방자치단체장이 대신 후견 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후견 사무에 드는 비용도 예산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습니다.
단 요건 중 하나가 이렇습니다. '권리를 적절하게 대변하여 줄 가족이 없는 경우'입니다. 가족이 있는 대부분의 집은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뜻이죠.
숫자로 보면 이렇습니다
지금까지는 절차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돈 이야기를 해보죠.
앞서 인용한 복지부 조사에는 비용 수치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치매 환자 한 명에게 1년 동안 드는 관리 비용입니다.
| 어디에 계시는가 | 1인당 연간 관리 비용 |
|---|---|
| 지역사회 거주 | 1,733.9만원 |
|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 3,138.2만원 |
같은 조사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숫자가 있습니다. 요양병원이나 시설에 모시기 전까지, 가족이 직접 돌본 기간이 평균 27.3개월이었습니다. 2년 3개월입니다.
비용을 항목별로 더 뜯어보고 싶으시다면 장기요양보험과 요양원 비용 글에 정리해뒀습니다. 이 글은 비용이 아니라 '그 돈을 누가 꺼낼 수 있느냐'를 다루니, 두 편을 같이 보시면 그림이 맞춰집니다.
그럼 시설에 모신 뒤로는 얼마가 들까요? 여기서 한 가지를 빠뜨리면 계산이 크게 어긋납니다. 물가입니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인 연 2%를 그대로 적용해보겠습니다. 지금 3,138만원인 비용이 매년 2%씩 오른다고 가정한 계산입니다.
| 기간 | 물가를 빼고 계산 | 물가 2%를 반영 |
|---|---|---|
| 5년 | 1억 5,691만원 | 1억 6,331만원 |
| 10년 | 3억 1,382만원 | 3억 4,362만원 |
| 15년 | 4억 7,073만원 | 5억 4,270만원 |
10년이면 2,980만원, 15년이면 7,197만원이 더 듭니다. 물가 하나만 빠뜨려도 이만큼 어긋나는 겁니다.
10년째 되는 해의 1년치 비용도 볼 만합니다. 지금 기준 3,138만원이던 것이 3,750만원이 됩니다.
여기서 이 글의 두 축이 만납니다. 이만한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의 원천인 어머니 예금은 잠겨 있는 상황 말입니다.
숫자는 집집마다 다릅니다. 기간도, 물가 가정도, 시작 금액도 다르니까요. 그래서 직접 넣어보시는 게 가장 빠릅니다. 물가 상승 계산기에 금액과 기간, 물가 상승률을 넣으면 지금 이 돈이 나중에 얼마가 되는지 바로 나옵니다.
부모님 자산으로 몇 년을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은퇴자금 계산기가 더 맞습니다. 자산과 매달 나가는 돈을 넣으면 언제 바닥나는지 보여줍니다.
준비 비용이 아까워 망설여지신다면 복리 계산기로 반대편도 계산해보시죠. 공정증서 비용이 클지, 잠긴 돈이 클지는 숫자가 답해줍니다.
그래서, 오늘 무엇을 하면 될까요
'172조원'이라는 숫자가 알려주는 건 결국 하나입니다. 준비는 늘 늦고, 그 대가는 남은 가족이 치른다는 것.
다시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은행이 막는 기준은 진단서가 아니라 의사능력입니다. 미리 받아둔 위임장은 법이 죽인 게 아니라 증명할 길이 없어 막힙니다. 그 열쇠는 가정법원이 쥐고 있고, 후견인이 되어도 어머니 돈은 끝까지 어머니 돈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절차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부 '어머니의 판단력이 남아 있을 때'만 선택지가 넓다는 겁니다. 그 뒤로는 선택이 아니라 절차만 남습니다.
거창한 걸 하시라는 게 아닙니다. 이번 명절에 부모님 댁에 가시거든, 어느 은행에 계좌가 있고 보험은 어디에 들어두셨는지만 여쭤봐 두셔도 출발선이 달라집니다.
그 대화를 한 번 해둔 집과 하지 않은 집의 차이는, 나중에 몇 달의 시간과 몇 천만원의 현금흐름으로 나타납니다.
자주 받는 질문 여덟 가지
치매 진단을 받으면 그날부터 은행 거래가 막히나요?
아닙니다. 은행이 보는 것은 진단명이 아니라 그 거래를 이해할 수 있는지입니다. 대법원 2008다58367 판결이 기준을 세웠습니다. 의사능력은 법률행위마다 따로 판단합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평소처럼 거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머니가 예전에 써주신 위임장이 있는데 쓸 수 있나요?
법적으로 자동 소멸하지는 않습니다. 민법 제127조와 제690조는, 본인이 성년후견을 받는 것을 소멸 사유로 두지 않았습니다. 다만 은행이 본인 의사를 확인할 수 없으면, 실무에서는 지급을 보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년후견과 한정후견은 무엇이 다른가요?
행위능력을 얼마나 제한하느냐가 다릅니다. 성년후견은 원칙적으로 본인의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게 하고, 한정후견은 법원이 정한 범위만 동의를 받도록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정도가 가벼우면 한정후견이나 특정후견이 맞습니다.
후견인이 되면 부모님 재산을 자유롭게 쓸 수 있나요?
아닙니다. 어머니가 사시는 집을 팔거나 세를 놓으려면, 민법 제947조의2 제5항에 따라 가정법원 허가가 필요합니다. 후견등기에 월 인출 한도가 정해져 있으면 그 범위 안에서만 인출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 계좌에서 제 계좌로 돈을 옮겨도 되나요?
권장하지 않습니다. 금융위원회 등이 만든 문답집을 보시죠. 객관적인 증빙이 없으면, 은행이 지급을 거절해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후견인의 권한 남용이나 재산 범죄로 의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원비가 급한데 후견 심판을 기다릴 수밖에 없나요?
2023년 4월 20일부터 시행된 제도가 있습니다. 가족이 요청하면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없이 병원 계좌로 직접 이체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대상이 치료비와 장례비로 한정되고, 돈이 가족 손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후견계약을 써두면 법원에 안 가도 되나요?
가야 합니다. 민법 제959조의14는 계약을 공정증서로 작성하도록 하고, 효력은 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한 때부터 생깁니다. 달라지는 점은 후견인을 본인이 미리 고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은행에 미리 대리인을 등록해두는 제도가 있나요?
한국 은행권에는 아직 자리 잡지 않았습니다. 금융당국이 검토 중인 단계입니다. 보험의 지정대리청구인 제도와 혼동하기 쉬운데, 그것은 보험금 청구를 대신하는 제도라 예금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참고 자료
- 금융위원회 — 2025년 업무보고 보도자료 (치매머니 172조원)
- 보건복지부 — 2023년 치매역학조사 및 실태조사 결과
- 금융위원회 — 성년후견인 금융거래 매뉴얼 보도자료
- 금융감독원 — 거동 불가 예금주의 치료비 목적 예금 인출 절차 개선
- 민법 제9조 — 성년후견개시의 심판
- 민법 제10조 — 피성년후견인의 행위와 취소
- 민법 제12조 — 한정후견개시의 심판
- 민법 제13조 — 피한정후견인의 행위와 동의
- 민법 제14조의2 — 특정후견의 심판
- 민법 제127조 — 대리권의 소멸사유
- 민법 제690조 — 사망·파산 등과 위임의 종료
- 민법 제947조의2 — 피성년후견인의 신상결정 등
- 민법 제959조의14 — 후견계약의 의의와 체결방법
- 민법 제959조의15 — 임의후견감독인의 선임
- 신탁법 제59조 — 유언대용신탁
- 치매관리법 제12조의3 — 성년후견제 이용지원
- 대법원 2008다58367 — 의사능력과 법률행위의 무효
- 대법원 전자후견등기시스템
- 중앙치매센터
-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 후견제도
- 대한법률구조공단
-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 신탁 보수 공시
여기 담은 내용은 2026년 7월에 시행 중인 법령과 정부 발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특정한 사건에 관한 법률 조언으로 쓰이도록 만든 글은 아닙니다. 실제로 후견 심판이나 계약을 준비하실 때는 가정법원과 전문가의 확인을 꼭 거치시기 바랍니다.